3-1. 맹자
맹자는 전국 시대 추나라 사람으로 어릴 때부터 공자를 숭상했으며, 이후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발전시켰다.
공자는 인이라 부르며 '예'를 행하는 인간의 주체성에서 인간의 덕성을 찾아냈다. 맹자는 이러한 인간의 덕성을 인간이 지니고 있는 하늘의 목적을 지닌 법칙성으로 전제했다. 이것을 인간의 본성이라 하며, 인간의 본성은 선함을 이야기하는 성선설을 제시했다.
공자는 예를 행하는 인간의 주체성을 두고 '인'이라고 하였다. 맹자는 이러한 인의 개념에서 한 발짝 나아가 인간의 본성은 선이라는 주장에 대한 뒷받침으로 인간의 마음에는 인·의·예·지와 같은 사덕의 사단이 갖추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사단에 속해있는 인은 공자의 인 개념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사단의 인운 '측은지심' 혹은 '남의 힘든 상황을 그냥 못본척 넘길 수 없는 마음'이며, 의는 불의불선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증오하는 '수오의 마음', 예는 타인에게 양보하는 '사양의 마음', 그리고 지는 선악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시비의 마음'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와 같이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용어의 사용에도 차이가 있고, 맹자 자신의 용어법에도 다소 일관성이 부족한 경향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맹자가 인이란 사람의 덕이라고 바라보아 이것이 위정자에 의해 실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는 점에서는 공자의 사상을 그대로 이어가는 부분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맹자는 농사의 방해가 되는 강제징역이나 전쟁을 피하고, 우선적으로 민생의 안정을 추구하며 도덕교육을 행하는 길로 이어나가 인륜의 길을 가르친다면 천하의 사람들은 기뻐하여 심복하고 귀일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서 맹자는 인정이 곧 왕도이며, 이전의 성왕들의 정치로 연결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맹자는 덕치주의 사상에 대한 근거로 하늘이 만민을 낳고 그 통치자로서 유덕자를 천자로 명한다는 <서경> 이후의 천명관을 들었는데, 이와 관련하여 '사단'설 외에 '오륜'설을 주장했다. 인간관계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는데, '부자유친·군신유의·부부유별·장유유서·붕우유신'의 다섯 가지이다. 결국 천자에 대한 하늘의 의지는 백성의 소리와 천지의 제신의 승인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천자에 대한 하늘의 의지가 정해지기 위해서는 민생을 안정시켜야 하며 이를 통해 맹자의 사상에는 민본주의 요소가 추가되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계승하고 공자가 수립한 인간의 실천적 주체성이나 덕에 의한 정치라는 사고방식을 전통적인 하늘의 신앙과 결부시킴으로써 이를 발전시켰다. 성선설이나 왕도론을 주장하는 그의 사상에서 그러한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맹자의 사상적 배경에서는 공자의 정당성을 증명하고자 한다. 맹자는 성인의 전형이라는 전설상의 제왕인 요·순부터 5백년 정도 흘렀을 때 은의 탕왕이 나타나고, 탕왕에서 다시 5백년쯤 흘러 주나라의 문왕, 문왕에서 5백년쯤 흘렀을 때 공자가 등장해 선왕의 도를 전했다는 점을 들어, 5백년마다 성인이 등장한다고 하는 일종의 순환론적 역사관에 따라 공자 철학의 정당성을 증명하고자 한다.
3-2. 순자
순자는 고대 중국의 전국시대 말기의 유교 사상가이자 학자이다. 순자 또한 맹자와 같이 공자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이를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사상적으로는 천의 사상을 발전시킨 자사나 맹자와는 달리, 예에 뛰어났던 유교 계통에 속한다. 다만 사람의 본성은 착하다고 성선설로서 전제한 맹자와는 달리, 인간의 본성은 본디 악하다고 하는 성악설을 주장했다. 이러한 인간의 악한 본성을 예를 통해 변화시켜 선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순자의 철학적 사상의 바탕이 되었다.
순자의 철학적 기초가 되었던 공자는 있는 그대로의 종교의례·제도·관습을 예로 삼았다. 공자는 성인 주공에 의해서 정리된 중국인의 제도나 관습 등을 중국의 전통적 문화유산으로서 신뢰하고 존중했다. 공자의 경우 예를 아직 하나의 덕목으로는 인정하지 못했었다. 순자 또한 예를 대하는 공자의 태도를 인정하는 만큼, 예는 성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영원히, 즉 시대의 제약을 넘어서서 무한하게 타당성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다만, 순자에 따르면 옛 시대의 성왕 업적은 시대가 오래되므로 전승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시대를 살아가는 후세 사람들을 위해서는 후세의 왕에 의해 제시되는 새로운 내용 또한 예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세의 왕에 대하여 률에도 성왕의 예와 같은 권위를 인정하고 그것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 공자 이후 덕치주의 전통에 새로 법치주의의 요소를 추가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순자는 공자의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는 지점에서 맹자와 같은 결을 가졌으나, 인간 심성에 관한 내용에 한해서는 맹자와 다른 사상을 지녔다. 순자는 맹자의 인간론 사상에 관하여 인간의 덕, 즉 인간의 마음에 구비되어 있는 자율성을 하늘의 목적을 지닌 것 내지는 하늘의 의지를 담당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맹자의 방식에 대해 부정을 드러냈다. 순자도 인간의 마음에는 법칙성에 지배되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것을 하늘의 기능이라고도 설명한다. 다만 순자가 설명하는 하늘의 기능과 인간 마음의 법칙성은 하늘 자체는 자연성과 법칙성임을 이야기하며, 하늘 자체가 목적이나 의지를 갖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순자에게 하늘이란 그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며 '구체적인 결과는 알 수 있지만, 그 원인이 된 무형의 곳은 알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이는 도가 사상의 '도' 혹은 '무위자연'의 사고방식과 유사하다. 그러나 순자는 유가 사상가이며,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성왕이 만든 예라고 하는 문화를 절대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이를 바탕으로 성악설을 주장하였다.
순자는 한나라에서는 정통적인 유가의 인물로 분류되어졌으나, 송나라 시대 성리학의 흐름 속에서 성악설이 비난받으면서부터 그 이후로 긴 기간에 걸쳐 유가의 이단자로 여겨져 왔다. 그에 대한 재평가는 청나라 말기에서야 다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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